어땠을까?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사람은 요구, 선택지, 도전이 너무 많으면 불안해하고, 너무 적으면 따분해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결국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더운 날 여름날, 무더위를 피해 평소 가지 않던 낯선 커피숍에 들어선다. 차례를 기다리고 음료를 고르기 위해 마주친 메뉴판에 잠깐 당황한다. 간단한 아이스커피나 카페라테를 마실까? 라테도 여러 가지 맛이 있다. 잠깐만 오전에 커피를 2잔이나 먹었는데 아이스티 종류를 먹을까? 아이스티 종류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고민 중인데 카운터의 점원이 눈을 흘긴다. 순간 다른 것을 마실까 하는 생각을 접고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과잉 선택’ 또는 ‘선택의 패러독스’이라고도 알려진 ‘선택의 역설’은 선택권이 많을수록 오히려 선택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더 많은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수의 옵션이 오히려 사람들의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선택의 역설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중요한 결정을 미루게 만든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고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낮아지면서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택의 역설은 커피 메뉴를 고를 때뿐 아니라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과 같은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삶의 모든 문제가 양자택일 또는 4지 선다형 문제라면 좋겠지만 복잡한 현대사회 속 개인에게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있다.
사실 선택지의 크기는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류는 아주 최근까지 단순한 삶의 살아왔다. 비슷하게 태어나 성인이 되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누구와 어떻게 결혼할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또 옷은 어떻게 입을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이에 반해 현대의 삶은 모든 것이 변했다. 산업화로 점점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는 결코 갈 수 없었던 지역에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먹어보지 못했던 것들,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먼 나라로부터 수입되는 상황이라 그만큼 우리의 선택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 많은 선택지는 더 많은 자유를 뜻하는 것이고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은 자유가 더 좋은 것이라는 믿음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많은 선택지와 자유가 있다고 해서 결코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거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을 만드는 선택의 과부하는 왜 생기는 것일까?
첫째, 인간의 관심과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사야 할 제품의 브랜드가 많거나 나 좋다는 사람이 많을 때, 다양성이 넘칠 때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양자택일일 때는 두 가지만 면밀히 검토하면 된다. 4개 중 하나를 선택할 때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옵션이 10개 이상이라면 일일이 살펴보기 겁난다. 그 수에 이미 압도되어 결정을 미루거나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리 매캘리스터(Leigh McAlister) 조교수는 ‘다양성, 욕구, 행동에 대한 연구논문‘에서 “상품의 다양성은 고객의 선호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 다양성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서면 고객의 선호는 높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한다“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심리학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이때, 서점에 심리학 관련 서적이 딱 한 권만 있다고 하면 그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왠지 ‘인기가 없는 책이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이 책 말고 더 좋은 책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어서다. 반면 관련 카테고리의 도서가 100권이 넘는 다고 하면 이번에는 어떤 것을 살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비슷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으니 내용이 좋은 지는 비교 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더 많은 선택지는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므로 뇌는 당연히 많은 선택지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일정 정도의 ‘피로도’라면 괜찮겠지만 임계치를 넘어서는 스트레스가 발생한다면 결국 우리는 뇌는 선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선택사항이 많을수록 기대치가 높아진다.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무언가에 대한 기준을 높게 설정할수록 못 미치는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마련이다.
제품에 대한 옵션이 많을 때, 우리는 그 수많은 선택사항 중에 나에게 꼭 맞는 제품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다. ‘네이버 쇼핑’ 검색창에 내가 찾는 제품의 키워드를 집어넣었을 때, 수천 가지 제품 목록이 나열된다면 일단 희망을 품게 된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제품이 있을 거라는… 하지만 그 수많은 제품 중 결국 내가 찾는 제품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기대한 만큼 실망하게 된다.
아마존을 필두로 온라인 쇼핑이 태동하던 때에는 ‘롱테일의 법칙‘을 앞세워 선택의 폭이 많을수록 좋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었다. 판매자는 조금 더 많은 제품과 선택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수많은 옵션이 선택을 방해하고 쇼핑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셋째, ‘선택의 역설’을 부추기는 마지막 요인은 ‘불확실성‘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선택하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진행한 ‘개인 은퇴 프로그램의 등록률과 관련된 연구‘를 한번 살펴보자. 낮은 수준의 금융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수의 펀드를 제안했을 때는 약 65%의 사람들이, 금융지식수준이 높은 경우에는 88%의 사람들이 펀드와 관련된 은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반면 각각의 사람들에게 적은 수의 펀드가 포함된 프로그램을 제공했을 때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투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약 65%가 참여하고 금융투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80%가 참여했다. 결국 소비자가 상품과 관련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선택의 역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선택의 고통에 빠진 소비자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 핀셋 마케팅
최근에 소비자들의 취향을 콕 집어 주는 핀셋 마케팅 유행이다. ‘핀셋 마케팅‘이란 핀셋으로 콕 집어내는 것처럼 고객의 범위를 작게 세분화하여 진행하는 마케팅 전략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주로 고급 수입 자동차나 해외 명품 브랜드와 같은 하이엔드 업종에서만 진행하던 마케팅이다. 소수의 VIP를 타깃으로 그들의 취향을 분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던 방식이 바로 그것.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타깃은 자연스럽게 VIP에서 일반 대중으로 확장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핀셋 마케팅을 찾아볼 수 있는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 비율이 증가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대용량이 불필요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소포장 야채‘ 상품은 다양한 야채를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해좋은 반응을 얻었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이 증가함에 따라 관련 상품들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핀셋 마케팅의 또 다른 예이다. 편의점 CU에서는 반려견, 반려묘 구분 없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반려동물 전용 보양식을 별도 공간에 판매하고 있다. 애완용품 및 먹거리에 아낌없는 투자하는 ‘펫팸족’의 특성상 일반적인 간식 외에 기력 회복, 면역력 증대까지 신경 쓰는 디테일함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선택의 역설’을 줄여주는 온라인 쇼핑몰 전략
1. 빅데이터 기반 개인화 큐레이션

소비자들을 예측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핀셋 마케팅이 근래에 들어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최근 다수의 *D2C(Direct to Customer)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선택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있다.
* D2C(Direct to Customer) : 기업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뜻함.
‘큐레이션 서비스’란 고객의 구매성향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이 관심 있어할 상품을 인공지능 또는 쇼핑몰 MD가 선택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해당 쇼핑몰에는 다양한 상품이 존재해야 한다. 옹색한 상품군에서 뽑아낸 추천상품이란 고객에게 외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품군 속에서 인기 있을 만한 상품을 제안하는 것이 큐레이션의 기본이다.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쇼핑몰들은 고객의 구매내역, 고객과 유사한 성별과 연령대의 구매 데이터 등을 분석해 고객에게 맞춤화된 추천 상품을 보여준다. 이를 ‘개인화 추천’이라 하고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기술로 개인의 취향을 분석한다. 이들 쇼핑몰들은 이용해 보면 고객의 이동경로 곳곳에 ‘연관 상품’, ‘추천상품’을 배치해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카트’가 지나는 길목에 ‘함께 사면 좋을 상품’, ‘인기상품’, ‘추천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대형마트의 상품 제안 전략과도 유사한 전략이다.
2. 고객의 콘텍스트(상황)에 기반한 필터 기능

쇼피파이, 카페24 등 최근의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은 관리자가 쉽게 추가 삭제할 수 있는 필터 기능을 제공한다. 제품의 속성뿐 아니라 계절별, 상황별, 고객의 취향별 필터를 제공한다면 고객은 수많은 상품 속에서 헤매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에는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코디’라는 필터를 추가한다거나 신발 쇼핑몰이라면 ‘빅사이트 고객만을 위한 상품’이라는 필터를 제공해 내가 찾고 싶은 상품을 바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수 백가지 제품 중에 고객이 고르기 좋도록 선택의 폭을 줄여주는 것이 큐레이션의 핵심이다.
3. 더 쉽고 직관적인 디자인

사람들이 인터넷 서핑을 할 때, 해당 페이지에 계속 머물 것 인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에서 20초 사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고객의 시선을 끌고 바로 사이트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의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화려한 컬러와 복잡한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제품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논리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그룹화하고, 고객의 관심사에 맞추어 카테고리를 구성한다면 사람들이 겪는 ‘선택의 과부하’를 상당 부분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쇼핑몰의 UX/UI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4. 선택을 돕는 상세한 정보

가격이 높거나 복잡하고 브랜드 간 품질의 차이가 큰 상품의 경우 제품과 관련된 장단점을 보기 쉽게 나열해주는 것이 좋다.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있다면 동영상을 제작해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상만큼 확실하게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없으며 특히나 최근의 젊은 세대는 동영상으로 제품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품 정보를 제공할 때 고객이 만족할 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중요 표시(신상품, 인기상품, 전문가 추천 등)를 하는 것도 잊지 말자.
선택의 역설
선택권이 많을수록 오히려 선택하지 못하는 현상
안녕하세요